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지난 2003년 8월말 어느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이맘때쯤입니다.

이날 오전 중국 연길시의 농업은행 강당에선 ‘의미있는 행사’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규모 1위 금융자동화기업체인 노틸러스효성이 중국의 5대 은행중 하나인 농업은행 연길시 지부에 5대의 현금입출금기(ATM)을 기증하는 행사였습니다.

불과 ATM 5대를 기증하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규모는 의외로 컷습니다. 당시 노틸러스효성의 최병인 사장이 행사를 위해 직접 연길로 날아왔고, 연길시 정부 고위관계자들과 농업은행 간부들이 강당에 집결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연길시 고위 간부들중에는 조선족 출신들도 많았는데 행사장에서 본 그들의 표정에선 자부심이 잔뜩 묻어났습니다. 그들에게 잘사는 한국은 중국 한족들에게 기꺼히 ‘자랑할만한 조국’이었습니다.

또한 단촐한 하얀색 블라우스 유니폼입고 행사장에 참석한 수십명의 농업은행 일반 여직원들의 단정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긴장과 수줍음, 호기심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엄숙함이 혼재됐던 그녀들의 표정,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시기적으로 당시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전반적인 사회 인프라의 확충에 대대적으로 나설때였습니다. 특히 중국의 대형 은행들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금융서비스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ATM 도입을 늘려나갔습니다.

당시 국내 ATM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 해외시장 특히 중국 시장을 노크해왔던 노틸러스효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노틸러스효성은 중국에서 현지법인을 운영해왔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시장 여건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비록 중국의 변방이지만 연길에 ATM을 기증하고, 또한 조선족 동포 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지원하고 한국 방문 프로그램도 제공했습니다. 중국의 주류 시장에 편입될려면 그에 앞서 그들 사회에 공헌 또는 기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노틸러스효성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공이산의 인내라니...만만치 않은 중국시장

그렇게 조금씩 중국에서의 입장을 확장해 나간 결과 현재 노틸러스효성은 중국시장에서 연간 약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는 3만2000개의 지점을 보유한 중국우정은행에 ATM을 납품하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같은 중국 시장 매출규모는 당초 노틸러스효성이 원했던 수준에는 미흡한 수치입니다.  특히 다른 것은 몰라도 중국 시장 공략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을 겁니다.

여전히 중국의 은행들에게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까다로운 진입 규제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또한 기존 중국 시장을 선점했던 글로벌 금융자동화기 업체들의 견제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글로벌 금융자동화기 시장에서 중국은 최대의 격전지입니다.
 
따라서 우리 금융자동화기업체들에겐 ‘백년하청’(百年河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히 중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고, 다만 노력을 해도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하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가끔씩이지만 우리 금융자동화기 업체들이 중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하면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됩니다. 성과의 경중을 떠나서 그 성과보다 몇배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열리는 빗장

 

그리고 2011년 8월 25일. 8년전 그 때처럼, 역시 아침 저녁으로 가을 느낌이 나는 날씨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언론들은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퇴장 소식을 싣느라 하루 종일 호들갑입니다. 잡스 소식에 묻히긴 했지만 LG엔시스가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중국발’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LG엔시스, 환류 ATM 중국 5대 은행 진입 성공’

기사 제목만 놓고 보면 대단한 성과입니다. ‘중국 5대 은행에 진입이라니? LG엔시스가 벌써 성과를 냈다고?’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LG엔시스 관계자에 문의해 보니 예상했던 대로 자체 브랜드로 중국은행에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NCR의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이었습니다.


중국은행, 농업은행과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NCR 마크를 붙여 NCR을 통해 납품되는 것이죠. 그리고 구체적인 납품 대수도 NCR과의 계약 조건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성과는 이미 예견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LG엔시스는 앞서 지난해 1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NCR과 차세대 핵심기술 제품인 환류식 ATM 수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성과는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NCR은 중국내 금융자동화기기 시장의 ‘큰 손’입니다. LG엔시스는 지난 2009년 국산화에 성공한 ‘환류식(리사이클링) 모듈’을 탑재한 ATM을 제작해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LG엔시스가 OEM방식으로 중국 대형 은행에 진입한다고 해서 이것이 조금이라도 평가절하되서는 곤란합니다.

LG엔시스가 충분히 칭찬받아야할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중국 정부에서 요구는 까다로운 ATM 안전기준 등 기술요건을 모두 충족시켰다는 점입니다. ATM에 대한 기술기준은 중국과 한국이 각각 다릅니다. 보안장치 등 몇가지 부문에서는 한국보다 기준의 강도가 더 높습니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위해 LG엔시스는 그동안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이번 성과로 인해 언젠가는 자체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됐습니다.

또 하나는 국산 ‘환류식 모듈’의 탑재입니다. 환류식 ATM이란 입금된 돈을 다시 출금되도록 해주는 핵심 부품입니다.

NCR은 이런 ‘환류식’ 기술이 없습니다. 유럽계 금융자동화기업체는 환류식보다는 CD(현금지급기)중심의 기종에 강합니다. 환류식 ATM이 각광을 받는 것은 현금문화의 영향이 큰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권입니다.

따라서  NCR은 지금까지 일본 ATM업체들로부터 공급받은이 환류 모듈을 적용해 ‘환류식 ATM을 중국 시장에 공급했습니다. 따라서 LG엔시스의 이번 성과는 국산 환류식 모듈의 국제 경쟁력이 입증됐다는 점을 반증합니다.
 
노틸러스효성이 직접 중국 시장을 뚫는 전략이라면 LG엔시스는 일단 OEM방식을 병행하면서 중국 시장의 포션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LG엔시스는 자체 브랜드로 중국의 또 다른 대형 은행에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으며, 대형 은행은 아니지만 중국내 100위권 은행에 자체 ATM을 납품했다고 합니다.

 

어떤 전략이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전략의 효율성을 따지기 보다 거대한 중국 시장 공략에 필요한 것은 전략의 세련됨이라기보다는 여전히 묵묵한 ‘인내’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합니다.

 

언제가 금융자동화기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속상하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IT제품은 ATM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내 시장에선 ATM 가격의 폭락으로 여전히 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금융자동화기 업계가 중국시장에서 하루 빨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해 봅니다.

 

[박기록 기자의 블로그= IT와 人間]


 

2011/08/26 15:22 2011/08/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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